2006년 11월 24일, 대한민국에서 개인휴대전화에 가입한 사람이 4000만명을 넘었습니다. 휴대폰 가입률 82.3%, 휴대폰 가입률이 80%를 넘는 나라는 한 사람이 휴대폰을 두개씩 가지고 다니는 비즈니스맨들 덕에 보급률이 120%를 넘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홍콩(...도시국가?), 전 국민 다 합해봐야 500만 밖에 안되는 핀란드밖에 없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세계에서 이동통신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라 해도 손색이 없죠. 그런데, 이 기사를 보니 꼭 10년전 일이 생각납니다. 10년전 97년, 무선호출 서비스, 흔히들 '삐삐' 라고 부르는 서비스의 이용자가 1500만명을 넘었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삐삐라는 서비스를 잊었지만.... 지금 셀룰러나 PCS 대성공의 기반이 삐삐였다는 것을 부인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 회사가 없었다면 휴대폰 이용자수는 아직도 2000만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의 CI, 여담이지만, 한화가 올해부터 쓰는 새 CI와 많이 비슷함.


한국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무선호출 서비스가 맨 처음 시작된 것은 82년 12월 15일입니다.
구의동의 한국방송통신공사 전화국 한 구석에서 더부살이 형태로 사업을 하던 한국이동통신서비스(지금의 SK Telecom, 90년 민영화 전까지 한국통신이 지분을 전부 가지고 있던 국영기업이였습니다)이 서울시계 내에서, 예외적으로 성남시와 의정부를 포함한 지역에서(?확실치 않습니다) 가입자 235명을 바탕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경찰,군인이나 정보기관 요원이였다네요.

-확실치 않다? 아마 군인들을 위해 그러지 않았나 싶지만, 전파월경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터진다'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중계기 설치했다는 기록은 성남1개, 의정부1개 밖에 없네요. 군사목적인가 봅니다 :-)

서울올림픽 전까지만 하더라도 삐삐에 관심이 있던 사람은 별로 없던 것 같습니다. 1984년 3월이 되어서야 가입자 만 명 돌파. 몇년 후 있을 삐삐 열풍과 비교하면 이해가 안가는 숫자입니다. 요금이 비싸서 그랬던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정확한 요금은 잘 모르겠지만, 90년 이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통신요금이 '건당' 기준으로 부과되었죠. 삐삐역시 마찬가지였던것 같은데.. 그 당시 요금은 별로 비싸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해 봅니다. 95년 부가세합해서 10700원 정액제 요금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제2사업자 출범 이후 자료기 때문에, 삐삐요금이 싸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지는 못하네요.
.....................설마 단말기 값이 비싸서 그랬던 것은 아니겠죠? :-)

87년이 되어서야 가입자 10만명 달성. 100만명 넘긴것은 1992년 4월 21일, 제2사업자가 서비스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입니다. 한국이동통신 독점이였던 시절이니 혹시 100만번째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감에도 안나오고 조선일보에도 안나오더군요.

삐삐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전국 평균경쟁률 7대1의 경쟁률을 뜷고 사업자가 된 제2사업자들이 92년부터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입니다. 93년 7월 200만명 돌파, 100만명 넘는데 10년이 걸렸는데 1년하고도 2개월만에 200만을 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삐삐에 대핸 기억은 이 시점 이후일 겁니다. 96년에 '천만' 가입자 돌파 후 97년 1500만, 최고점 찍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이동통신의 케릭터, 삐삐 사진들은 대부분 (누가 찍었는지 모를)저작권이 무서워서 서울이통의 케릭터로 대신합니다. 괜찮은 자료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현재 리얼텔레콤이라는 이름으로 무선호출 서비스를 계속하는 인텍크텔레콤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해에 있었던 PCS사업자 선정에서 횡재한 대부분의 사업자들도 삐삐의 아성이 오래 갈 줄 알았죠.
어느 사업자 사장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더군요, '삐삐는 최소 10년동안 끄덕없다'
하긴, 그렇게 생각 할 만 했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PCS에는 거의 10배나 비싸고, 심하게 말해서, '걸어 다니면 안터진다' 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수신율이 안좋았습니다. 게다가, SKT를 제외한 모든 사업자들은 첫해는 부천(ㅡㅡ;;)에서, 다음해가 되서야 수도권 전역을 커버리지로 뒀습니다. 삐삐 사업자들이 가입자를 500만명을 더 모을 동안 PCS 사업자들은 조급해 하지 않고 철저한 준비를 했나 봅니다.

PCS 사업자들의 겸손(?) 을 보고 삐삐 사업자들은 오판했습니다. 하긴, 한국통신의 야심작이였던 '발신 전용' CT폰이 나와도 끄덕도 않던 삐삐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중전화가 골목마다 깔려 있었으니까 (여담이지만, 97년 공중전화는 한국통신에 670억의 흑자를 안겨줬습니다) '이동통화' 라는게 삐삐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CT폰이 증명해 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PCS역시 CT폰과 비슷한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CT폰은 공중전화 주변에 있을 때에는 걸어 다니면서 통화를 할 수는 있었으니까요. 사업자의 주장은 아니지만, 어떤 대학교수의 주장 '이리튬이 보급되기 전까지 삐삐는 끄덕없다' 사업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이랍시고 몇 푼 안되는 요금을 깎고, 학생과 유아층을 대상으로 엄청난 광고비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학생이나 아동용 잡지중 애독자 선물로 삐삐 안준 잡지 없을겁니다^^:;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삐삐가 가지지 못한 상대방의 완벽한 강점을 고작 '공중전화' 를 믿고서 그렇게 얕보다니... 만일 삐삐가 PCS출범할 때부터 백기를 들고 현재 리얼텔레콤이 하는 교통정보, 증권, 경마전문 단말기 같은 다른 특화된 사업을 찾았다던가, 아니면 회원수 유지할 생각만 하면서 마케팅비를 쓰지 않았다면 삐삐 사업자들이 하나빼고 죄다 파산하는 지금의 상황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현재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리얼텔레콤의 텍스트 기반 통신서비스는 증권 분야서 표준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PCS가 수도권 전역에 서비스를 개시한 98년 말(아마 12월일 겁니다), 셀룰러 사업자(여기서는 SKT와 신세기통신을 말합니다)는 2세대 CDMA전환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삐삐의 강력한 무기를 베꼈습니다. 무엇인고 하면, 문자메세지(!)서비스입니다. 기본 서비스가 아니라 핸드폰이 기기상태 같은것을 기지국에 알리기 위해 따로 만든 비상용 서비스를 용도전환한 것이긴 하지만 고작 숫자 보내는게 전부인 삐삐가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였습니다.

PCS 사업자는 삐삐의 강점을 열심히 벤치마킹(OR 컨닝) 했습니다. 수도권 전역서 핸드폰을 쓸 수 있게 된 때 부터 삐삐의 대리점을 고스란히 컨닝했습니다. PCS사업자 전원이 엄청난 돈을 망 투자와, 개통 수당과 '핸드폰 보조금'에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삐삐 사업자는 중소기업이나 해당 지역의 유지의 출자금으로 유지됬습니다. 삐삐 사업자의 모기업중 지금도 남아있는 회사는 부도 낸 삼보컴퓨터밖에 없더군요. 삐삐 공짜로 주는것도 겁내는 삐삐 사업자에 비해 PCS사업자는... SK, 코오롱, 포스코, KT,  한솔, LG... 이런 거대한 기업들이 IMF도 겁내지 않고 싸우는 통에 삐삐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납니다.

97년 이후의 삐삐가입자 숫자 통계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해 만에 완전 박살이 난 것은 확실합니다. 1998년 6월에 휴대전화 총 가입자 천만돌파, 1999년 8월 2000만명. 삐삐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하지 않았다면 이런 숫자는 말도 안 되겠죠. 삐삐 완전 전멸 시점은 1999년으로 보면 되겠네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삐삐가 없었다면 IMF도 아랑곳않는 휴대전화의 이런 성장세는 없었을 것이라 봅니다.

2000년, 삐삐 시장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당연히 사업자들도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졌죠. 7월 20일, 나래앤컴퍼니의 업종전환(컴퓨터 만들더군요)을 시작으로  8월1일 전북이동통신, 9월6일 제주이동통신, 12월 23일 새한텔레콤이 사업을 중단합니다. 다음해에는 '지방사업자' 라는 게 없어져버립니다. 4월3일 코리아썬컴, 6월7일 세정21과 케이티아이같은 경우는 사업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7월 20일 해피텔레콤 부도와 동시에 서비스 중단. 이상의 기업들은 삐삐라는 서비스를 인내심 있게 지속한 사업자들로 기억되지 못하고 불성실 공시로 개미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힌 기업들이란 악명만 남겼습니다. 특히, 무슨 획기적인 데이터통신을 할것인 양 버티던 대구지역 사업자 세림아이텍, 코스닥에서 퇴출 당하자마자 사업을 포기합니다. 2003년 2월 12일. 대한민국의 지방 사업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015번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됬죠.


그래도 삐삐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2001년 SK텔레콤의 무선호출 사업부문을 인수한 인텍크텔레콤은 리얼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꾸고 012 번호로 무선호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입자는 약 4만명 정도라네요. 70%는 '전문적인 용도' 지만, 하루에 약 12~15명 꼴로 꾸준히 들어오는 신규 가입자(? 아니면 돌아온 탕아) 대부분은 개인적 추억때문에 쓰는 거라고 하네요.


한달 요금 많이 나와봐야 만 오천원 나오는 삐삐 한번 다시 개통해 볼까요? :-)

Posted by 비회원